임실군 제59회 임실 군민의 날 임실군 신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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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면소개

신평면(新平面)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청웅현에,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운수현으로 고려시대에는 남원부에, 조선시대에는 임실군에 속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지명 또한 우리 면에 새로운 들(새들)이 많아 신평(新坪)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청운동, 책평, 필동, 마항, 두류, 상천, 하천(원천), 도곡(금정), 토고(오궁), 지장 등 10개리에 소재지는 대리에 두고 관할하다가 1910년 일제와 을사조약 후 일제로 하여금 1914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과정에 도곡, 토고, 지장리를 신덕 면으로 편입시키고, 지금의 상가에다가 소재지를 두고 있던 당시 상 신덕 면의 상가를 비롯하여 하가, 마전, 덕골, 피암, 월평, 북창, 대죽치를 그리고 상북면(관촌면)의 가정리 일부를 합하여 지금의 원천리에 소재지를 정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혁 및 명칭유래

연혁 및 명칭유래 행정구역, 연혁 및 명칭 유래
행정구역 연혁 및 명칭 유래
新平面 연혁
  • 삼한시대 : 마한의 청운현에 속함
  • 삼국시대 : 백제의 운수현에 속함
  • 고려시대 : 남원부에 속함
  • 조선시대 : 임실군에 속함
  • 1914년 : 지장, 오궁, 금정리를 신덕면으로 편입하고 가덕, 덕암, 용암리를 신평면에 편입하여 원천리에 소재지를 두어 지 금에 이르고 있음
명칭유래
  • 새들(큰들)이 많아 신평(坪)이라고 함
昌仁 명칭유래
  • 창인리의 옛 지명은 책평, 챔평, 팸몰이라고 불리웠으며, 600여년 전 에 丁氏가 최초 마을을 형성하였다고한다. 창인리는 여러 지명이 있 으나 冊平이라는 이름은 마을의 형태가 책을 펴놓은 것 같다라는 데 서 이름이 붙여졌고, 병풍을 두른 것 같은 마을 뒤에는 졸음산, 서쪽 으로는 붓골(필동), 서당골, 벼루바위, 먹점, 문동골, 판이 책평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며 일명 졸음산이라 부르는 책평의 뒷산아래 예원 대학교가 세워져 있으니 평에 연유된 이름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곳이다.
大里 명칭유래
  • 조선조 중엽 광주 이씨가 마을 입구인 당산에 정자나무를 심고 정착 하여 오원강(烏院江) 상류에 돌로 대리보(大里洑)를 막아 농사를지 으면서 마을 앞 넓은 들을 개답하자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큰 마을을 이루었다. 이 마을이 지형상으로 말의 목과 같다고 하여 말목으로 부르다가 대리로 부르게 되었다. 마을 뒷산에 흙과 돌로 토성을 쌓아 마을을 지켰다는 화전 터가 있어 한때 이 마을을 화리(火里)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고 가끔 네모난 돌 등이 발견된다고 한다.
虎岩 명칭유래
  • 마을 입구에서 자연히 호석이 솟아나 있던 중 200여년 전에 한 도승이 나타나 저 호석을 부셔야만 마을이 잘 된다고 하여 그 말을 믿고 호석을 부순 결과 주민 20여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인공으로 호석을 세운 후 마을이 안정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1535~1574년 사이에 경주 김씨 계림군을 1세로 하여 7세손 계손공(繼 孫公)이 진천에서 처음으로 신평면 두류봉 아래에 거주하였으며, 그후 1600~1605년 사이에 밀양 박씨 박현의 12세손인 봉휘군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인 두류와 정부방침 아래 황무지 개발에 전력하여 비옥한 땅을 만든 마을인 농원이 201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합하여 호암이 되었다.
上泉 명칭유래
  • 조선시대 초, 어명을 받은 암행어사가 이 곳을 지나다가 지세를 보고 민가가 정착할 만한 곳이다라는 말을 하며, 샘을 파게 하고 이름을 시암내라 정한 것이 지금의 상천마을이다. 풍수지리로는 제비터라 불 리웠고 타지 사람들이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는 마을이다.
元泉 명칭유래
  • 1400년경 파주 염씨(坡州廉氏) 염옹동공과, 밀양 손씨(密陽孫氏) 손 경괴공이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하였고 그후 김해 김씨가 들어와 살고 있다. 마을 중앙 서당골에 큰 샘이 있어 샘내라고 부르다가 조선조 말부터 원천이라 부리게 되었으며 그 큰 샘은 없어져 자취도 볼 수 없다고 한다.
上加 명칭유래
  • 270여년 전 마을 앞을 흐르는 梧桐川을 경계로 음지에는 강릉 유씨 가, 양지에는 경주 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그후 많은 성 씨가 모여 오늘의 상가마을을 형성하였다. 옛날에 덕망 높은 분이 살 았다 하여 데울(加德)로 불리다가 1830년 윗데울(上加德)으로 바뀌었다.
下加 명칭유래
  • 아래데울이라고 부르며 웃데울 보다 낮게 생긴 마을로 마을이 하나 더 생기면서 加德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데울이란 덕자의 변화된 어원으로 德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이마을은 경주이씨가 80%이상 거주하는 집성촌이었으나 현재는 타 성씨가 몇 집 늘어나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지형상 하가마 을을 휘어감고 도는 섬진강은 이 마을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德田 명칭유래
  • 덕전마을은 2개 뜸으로 구성되어 첫마을은 덕골이라고 하고,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마을은 삼밭골이라고 한다. 삼밭골의 원명은 山幕으 로 최초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서 김녕김씨 한 분이 산에 움막을 짓고 자리를 잡은 것이 산막골로 불리워지면서 후손이 퍼지고 세월이 흘로 산막골은 삼밭골로 그리고 이곳도 일제시대에 지역 개명에 따라 麻田 으로 변천되었다고 한다.
皮岩 명칭유래
  • 이곳은 원래 갈씨가 살았고 갈씨가 멸망뒤 배씨가 살았으며 그 후 청웅면의 청주한씨들이 임진왜란때 피난을 온 곳이라 하여 피할 피 (避)자와 어두울 암(暗)자를 써서 避暗마을이었으나 일제시대 일본인 들이 지명을 바꾸어 皮岩으로 쓰고 있는 마을이다.
北倉 명칭유래
  • 신평면의 유일한 절터와 보물 267호인 석등이 남아있는 마을로서 피 암, 덕전, 죽치마을이 중심지이고, 실제마을이 형성된 것은 지금으로 부터 130여년전 폐허가 된 절터에 마을이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고 한다. 북창이란 지명은 임실군에 3창이 있었는데 임실읍의 동창 과 강진면의 서창, 이곳에 나라의 양식을 보관하였다는 창고가 있어 마을 이름을 北倉이라고 한다.
竹峙 명칭유래
  • 과거 운암 학암리나 선거리 사람들이 전주를 갈 때 이곳을 거쳐야만 되는 죽치는 350년전 전주이씨가 처음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대숲이 많아 대터로 불리워지다가 竹峙라 부리게 되었 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또 다른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중에 전주이 씨, 평산신씨, 경주김씨등 세 성씨가 죽치마을로 피난하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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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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