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제59회 임실 군민의 날 임실군 지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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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면은 7개 법정리 17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마을의 명칭과 유래는 다음과 같다.

유래/전설 행정구역별 연혁 및 명칭 유래 정보제공
행정리 연혁 및 명칭유래
館基里
(관기)
약 500년전 합천 이씨 비암공(比巖公) 휘 형남(亨南)이 정착한 이래 밀양 박씨가 들어와 현재는 밀양 박씨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가면서 이런 궁벽한 곳에도 객주집이 있다고 하여 객주집터라 하여 집관(館)자, 터기(基)자를 써서 관기라고 불리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사면의 맨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곡서원과 안씨계당 팔초정등 유서깊은 건물과 장군바위 등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하며 현재는 밀양 박씨, 합천 이씨, 순흥 안씨, 천안 전씨, 장수 황씨 등이 살고 있다.
圓山里
(원산)
1530년(중종25년)경 전주 최씨가 처음 정착하여 성주 이씨, 평강 채씨, 진주 소씨 등이 모여서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뒷산이 둥그렇게 생겨 원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당초에는 시묘 터로 발전하였다는 설도 있다. 덕암서원이 있고 원산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仙源里
(선원)
홍주 이씨가 1900년대에 정착한 이래 마을을 이루었고 당초는 선운리(船運里)라 하였다가 선경 도원(仙境 桃源)이라 하여 선원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한때 한천 이환용(寒泉 李桓溶)옹이 회당 홍순주(晦堂 洪淳柱) 선생을 훈장으로 모시고 서당을 세워 몽학을 할 당시는 인동은 물론 외지에서 많은 학동들이 모여들고 거유(巨儒)들의 왕래가 빈번하여 마을이 매우 흥성하였으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상촌이기도 하였다. 마을 뒤에는 송림에 둘러싸인 모정이 있고 그 앞에는 문하생들이 세운 회당 선생 유허비각(遺墟碑閣) 과 마을 동쪽 청룡날 끝에는 순흥 안씨 양세기적비(안달섭의 선조비 전주 최씨, 선비 재령 이씨)가 서 있다.
新川里
(신천)
이 마을은 1434년(세종16년)경 진주 하씨가,그후 해주 오씨가 살았으며 그후 1787년(정조11년)경에 협계 태씨와 전주 최씨가 들어와 살게 되었다. 사촌의 안동네라는 뜻으로 새내라 불리워졌고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자고로 피난터로 알려 졌으며 유명한 지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雁下里
(안하)
고려때에 원씨가 살았다고 하며 그 후 평강 채씨가 살았다. 1450년(세종45년)전주 최씨가 정착하였고, 전주 이씨, 합천 이씨, 평산 신씨, 남원 양씨, 순흥 안씨, 협계 태씨 등이 모여 살고 있다.당초에 안화(安和)라고 부르다가 마을 뒤의 12연주(連珠)가 마치 기러기가 나는 모양 이라고 하여 안하(雁下)라 불리우게 되었으며, 장수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大井里
(대정)
1650년(효종17년)경 부안 김씨, 경주 정씨가 살았으며 1782년? (정조6년)이후 전주 최씨,옥천 조씨, 전주 이씨, 동래 정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뒷산을 연화도수라 하였고 큰 석천이 있어 한우물이라 불리다가 일제초부터 대정이라 불리었다.
琴坪里
(금평)
1506년(성종10년)경 전주 최씨가 옥녀봉 아래 가무터에 정착하였다.옥녀봉아래의 가무터에 절터, 서골, 진등, 희곡 등에 산재한 가구가 모여서 금곡으로 불리다가 일제시에 목평과 합쳐서 금평이라 불렀다. 본 면에서는 맨 처음으로 1945년 원불교회관이 들어섰다.
牧坪里
(목평)
1761년(영조27년)경 전주 최씨와 은진 송씨가, 그후 수원 백씨 순흥 안씨 전주 유씨가 정착하게 되었다.산세가 아름답고 농토가 비옥하여 살기좋은 부자 마을로 알려져 있다.
寧川里
(영천)
이 마을은 고려 때에는 거령현 소재지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순흥 안씨가 정착한 이래 많은 성씨가 모여서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으며 왜정 때에는 주조장, 정미소, 대장간 등 많은 소규모의 산업시설이 들어서 있어 본 면의 경제를 주름잡기도 하였다. 지방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유일한 사액서원인 영천서원이 있어 많은 유학생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沙村里
(사촌)
고려조 거령현 당시(1076년 경 고려 문종30년) 향교터로 형성되었으며 거령 이씨가 세거하면서 고려조의 문하시중 이능간(李凌幹)이 살기도 하였다. 1170년(고려 의종37년)경에는 전주 최씨가,1600년(조선 선조33년)경에는 합천 이씨,1780년(조선 정조4년)경에는 전주 이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크게 이루어졌다. 거령현 때에는 승상촌(丞相村=정승이 사는 마을)으로 불리워 졌으며 지사방의 소재지라 하여 지사랑 이라 불렀다가 행정구역 개편이후 사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는 전주 이씨 효열부 정려각이 있고 승상봉, 승상교,기암 쌍노암, 모정 관풍정,4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정자나무 등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桂村里
(계촌)
이 마을은 1394년 (조선 태조3년)경에 벽진 이씨가 정착하였고 그후 전주 최씨, 합천 이씨, 문화 유씨 등이 정착하였다. 마을 뒤에는 명당설에 의하여 남원의 북속대지라는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의 명당에 영천 이씨 시조 이능간(李凌幹)의 묘가 있고 병자호란 때 사절신(死節臣)이요 병조참의를 지낸 벽진 이씨 충숙공 이상길(李尙吉)의 출생지이며 자고로 명당터라 하여 계촌이라 이름하였다. 마을 앞 다박솔과 모정이 인상적이다.
芳溪里
(방계)
지사면의 소재지로 재령 이씨가 정착한 후 1435년(세종17년)경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선생이 남원부사로 부임하여 이곳을 초도순시하면서 산수가 빼어남을 보고 큰아들 호군 조(凋)를 살게 한 이후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다. 지리 풍수설의 행주형(行舟形)이라 하여 마을 앞에 배 모양의 바위가 있어 주암이라 부르다가 1910년 이후 실곡, 삼산을 합쳐 방계리라 불렀다. 마을 앞 송림속에는 만추정(晩秋亭)과 연촌선생 유허비가 서있고 그 앞에는 지사면 경노당이 있으며, 마을 중앙의 주암서원에는 연촌 선생의 영정(影幀)이 보존되어 있다.
三山里
(삼산)
300여년 전 진씨, 송씨가 거주하다가 암내의 맑고 깨끗함에 취한 금산김씨가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 홈대를 이용하여 농 용수를 끌어들여서 홈몰이라 불렀으며 그후 마을 수구에 낮은산 3개를 쌓아 수구를 이루고 삼산이라 불렀다. 지금도 선돌 세 개가 서 있다.
實谷里
(실곡)
270여년 전 금산 김씨가 전남 곡성으로부터 이사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뒷산이 마치 황소가 건너는 형국이라 하여 황우도강(黃牛渡江)아라 하였고, 똥이 나오는 꼬리 밑에 마을이 있어 잘 산다는 것이다. 남원에 속했을 때 창(倉)이 있던 곳으로 북창이라 하였고 1910년 이후부터 실곡이라 불렀다.
溪山里
(계산)
목천 마씨가 처음 살았다 하여 마촌이라 했고 그후 정씨가 살게 되어 정촌이라 부르다가 장연 변씨, 진주 강씨가 살게 되어 마을이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마을 이름은 현주라 하였으나 조선 태조가 등극할 때 산신령께 기도드리기 위해 성수산으로 가는 도중 현주천을 건너려 하는데 물이 적으니 천(川)을 계(溪)로 하고 물이 없으니 현(玄)이라 했다 하여 현계(玄溪)라 불렀다. 1910년 이후 계산이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현주서원(玄洲書院)이 있고 임실향교 전교를 역임한 송암 강범희(松唵 姜凡凞)공의 추사비각(追思碑閣)이 서있다.
鳳棲里
(봉서)
1911년 광주에 사는 이연희라는 사람이 산수가 아름답다고 들어온 후 김.송씨가 계속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으며 옛날부터 한국의 8대명당인 권렴관시형(捲簾觀市形=주렴을 걷고 장터를 본다는 형국)의 대지가 있다고 하여 많은 술객들이 드나들었다. 처음엔 새골(鳥谷)이라 부르다가 봉황(鳳凰)이 깃든다고 하여 봉서라 부르게 되었다.
玉山里
(옥산)
이 마을은 1760년(영조36년)경에 광주이씨 이거만이 산수(山水)의 수려(秀麗)함에 매료되어 머물러 살게 되었으며 그후 장씨, 소씨, 송씨가 점차 이주해 마을이 크게 형성 되었다.마을 뒷산이 마치 옥을 꿰 놓은 것 같다하여 연주 산이라 불렀고 옥산사 라는 절이 있어 옥산이라 하였다는데 지금은 절의 흔적도 없고 서쪽은 돌이 빙 둘러져 성안에 들어가는 것 같으며 마을 앞에 벽옥제가 있어 옛날부터 시인 묵객이 많이 찾았으며 대대로 선비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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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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