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제59회 임실 군민의 날 임실군 강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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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전설 행정구역별 연혁 및 명칭 유래 정보제공
행정구역 연혁 및 명칭 유래
신기(新基)마을 백련산 영봉 아래 동쪽 산기슭에 상강진이란 마을이 형성되었으나 마을이 전답과 멀리 떨어져 생활이 불편하여 이곳에 터를 잡아 신기리가 되었다.
백련(白蓮)마을 백련산 상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청운지맥과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병풍처럼 놓여있어 마치 방안과 같아서 마을이 형성되기에 적합한 곳이다. 화순 최씨가 정착하여 백련리가 되었다.
부흥(富興)마을 200여년 전 안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뒷산이 백련산 상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마치 범이 쪼그리고 앉은 형국이라 하여 범뜸이라 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흥리로 개편하였다.
이목(梨木)마을 1664년(현종5년)경 김해 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큰 배나무가 있어 마을 이름을 배나무실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후 이목리라 부르게 되었다.
가목(柯木)마을 백제시대에 가남이라는 도사가 찾아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전설에 의하면 마을의 뒷골짜기에 큰 마을이 있었는데 도둑이 어찌나 심하게 들어 폐촌이 되었다가 다시 마을이 형성되어 가목이라 칭하였다.
갈담(葛潭)마을 신라시대에 왕족인 박씨가 정착하게 되어 왕박골이라고 내려오고 있으며 조선조에는 더욱 번창하였고 광주와 전주의 중간 역촌으로 발전한 마을이다.
회진(會津)마을 동래정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햇으며 마을이름은 바위가 까마귀 머리와 같다 하여 오두막이라 하였고 물이 모였다고 하여 회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백운(白雲)마을 200여년전 김해 김씨 삼현파 김수(김수로왕의 59대손으로 당시 형조참의)가 임진왜란때 전사하자 부인 옥천 조씨가 둘째 아들을 데리고 김해에서 이곳으로 피난해 와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당시는 태인원 이평면 종성리 백운동이라 하였는데 백운동에는 묵동 울령동 사자동 등 4개동으로 형성되었으며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로 편입되어 백운마을이 되었다.
용수(龍水)마을 회문산 상봉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려온 산이 마치 용과 같다고 하여 이름 붙은 용두산이 마을 앞에 우뚝 솟아있고 뒷산은 백련산 상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마을이 형성되어 용두산의 용자와 옥정호의 물을 합하여 용수리라 칭하였다.
옥정(玉井)마을 조선 중엽 밀양 손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손실이라고 부르다가 어느날 이곳을 지나던 도사가 이곳이 불원 옥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1914년 옥정리로 개칭되고 수몰 후 수몰선 위로 마을을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방(文方)마을 송씨가 조선조때 난을 피하여 이 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당시 민재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방으로 부르게 되었다.
수방마을 김씨라는 사람이 국법에 위배되자 살 길을 찾아 하늘만 보이는 이곳 수방리를 찾아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형국이 배와 같다 하여 수방이라 하였다.
학석(鶴石)마을 김씨가 안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내동, 죽원, 상기, 웃터, 산막으로 자연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상기마을 입구에 바위가 있는데 그 모양이 새 모양 같다 하여 학석이라 불렀다고 한다. 학석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율치(栗峙)마을 장수 황씨(황의동의 6세조)가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지금 하운암으로 넘어가는 재를 밤재하고 하여 율치라 하였다.
방현(訪賢)마을 천안 전씨(전명렬의 6대조)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뒷산 성좌 암에 어진 선비가 찾아왔다 하여 방현리라 칭하게 되었다.
이윤(伊尹)마을 강화 노씨(노영식의 6대조)가 조선조때 피난차 첩첩산중인 이 곳에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이곳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피난지라 하여 이윤이라 불렀다.
상필(上筆)마을 동쪽에 있는 산이 암소같은 형국이고 부락 위치가 외양간과 같다 하여 중방리라 하였으나 상․하 마을간 호칭관계로 원님께 소승을 제기하여 원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이 상중방이 되었다. 엄․박․송․김씨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부락 서쪽에 있는 산이 붓과 같다 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후 상필마을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하필(下筆)마을 고려조 시대에 너먼터라고 하여 지금의 하필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도둑이 어찌나 심한지 살 수가 없어서 강성수라는 사람을 필두로 지금의 하필마을에 터를 잡아 이사한 후 온 마을이 옮겨졌다고 전해오고 있다. 300여년된 떡갈나무(도토리나무)가 있으며 강진면의 한 가운데 있다 하여 중방리로 불렀다. 그후 필봉산 아래 있다 하여 필봉리로 바꾸어 부르다가 하필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마을 앞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이 곳을 지나는 한 도사가 이 바위를 없애야 마을에 재앙이 일어나지 않겠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말만 믿고 그 큰 바위를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그후 큰 배앙은 없었으나 마을이 마도지석처럼 가난해졌다는 말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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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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