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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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재고가

이웅재고가

  • 분류문화·체육
  • 주소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456-1
  • 문의063-640-2315
  • 운영시간 : -
  • 휴무일 : -
  • 이용요금 : -
  • 주차시설 : -
  • 장애인시설 : -

소개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는 소재 <이웅재고가>는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춘성정 종가’로서 효령대군의 증손 ‘춘성정 이담손(李聃孫, 1490~?)이 낙향하여, 1552년경에 세운 것으로 약 460여 년 된 종가이며, 17대 종손까지 이어지는 동안 춘성정 후손들을 특별히 ‘둔덕이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촌마을은 전체가 완만한 경사지에 지어진 마을인데, 이웅재고가는 그 곳에서도 종가답게 산쪽으로 물려 지으면서 마을 아래 길에서 보면 아래에서 위를 보는 것 같아서 그 당당함이 눈에 띈다. 조선중기 종가의 규범을 지키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위엄을 갖추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품위를 갖추고 있다. 안채, 사랑채, 안행랑채, 대문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었다.

1. 솟을대문
솟을대문에는 1870년(고종 7)에 이문주(李文冑, 1623~1717)의 효자정려 현판이 걸려있다. 솟을대문은 맞배지붕임에도 내부에서 보이는 천정은 위로 굽은 도리를 중심으로 부채살모양으로 배치해서 오목거울과 비슷한 궁륭구조로 되어 있다. 이 궁륭구조 위에 다시 맞배지붕을 구성할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서가래를 건 것으로 보인다. 이 구조는 솟을대문의 지붕모습인 맞배지붕 구조와 관련없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문채 앞에는 말을 타고 내릴 수 있는 하마석이 양쪽에 놓여 있고, 대문채 안쪽으로 마굿간과 창고가 갖춰져 있다.

2. 안채
안채는 종가의 주거공간이다. 축대 위에 남향으로 대청마루와 연결하여 5칸규모로 지었고, 대청을 가운데에 두고 왼편으로 안방을 두고, 오른쪽으로는 도장방이 마주하고 있다. 안채의 양 끝에서 남쪽으로 ‘ㄷ’자 형태를 이룬다. 지형상 경사가 있기 때문에 양쪽 날개채(익랑)는 본채보다 기단을 낮춰 지었고, 지붕도 단차를 두어 낮게 이어졌다. 왼쪽 날개채에는 부엌과 작은방, 도장을 갖추었고, 뒤편에 우물과 장독대, 그리고 방아실과 화장실을 두어 아녀자의 공간으로 하였는데, 부엌은 현재 입식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오른쪽 날개채는 작은 방을 두어 안채와 구별하였다. 안채 방의 위쪽과 도장방의 위쪽으로 다락방은 대청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채 대청의 대들보에는 ‘上之 四十六年 己酉年 閏二月’이라고 씌여 있다. 이것은 임금 재위 46년이 기유년이어야 하고, 그 해에 2월 윤달이 끼여 있어야 한다. 이로 본다면 안채 건물은 융희 3년 즉 1909년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종임금은 재위 44년 만에 순종에게 양위하였으나 상왕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上之四十六年’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웅재의 친동생 이양재(92)씨의 중언에 따르면, 친형인 이웅재씨가 큰집 이강준씨의 양자로 들어가고나서 이강준씨가 젊은 나이에 죽자, 이웅재의 친부모와 동생이 이웅재 고가에서 같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안채에는 이웅재의 친어머니가 거주하고, 오른쪽 날개채에는 이웅재의 큰어머니가 거주하면서 두 집이 함께 살았고, 이양재씨는 아버지와 함께 사랑채에서 기거하면서 손님치레를 하였다고 한다.
오른쪽 날개채의 작은방은 남쪽 측면에 아궁이를 두어 난방을 할 수 있게 하였는데, 자리를 돌아 앉으면 사랑채의 아궁이에 불을 집혀 난방을 할 수 있고, 다시 남쪽으로 돌아서면 안행랑채의 북쪽 측면과 닿아 있게 하여 생활에 편리를 더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중문을 두어 사랑채 뒷마당과 사당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 중문이 안채와 바깥마당을 이어주는 유일한 문이다.

3. 사랑채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높은 축대 위에 대청이 있는 건물이 보이는 것이 사랑채이다. 사랑채는 일자형으로 4칸짜리 홑집에 삼량집인데, 현재 건물은 1912년에 중수한 것이다. 삼량집은 지붕 바탕재인 서까래를 받는 도리가 셋인 집을 말한다. 즉 보 양끝으로 주심도리를 설치하고 가운데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얹은 구조이다. 이 세 개의 도리에 앞귀로 서까래를 건 구조로 가장 단순한 집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지붕은 맞배지붕이 되고 앞뒤로 툇마루가 없이 섬돌을 놓아 바로 대청으로 들어가게 된다. 대청은 뒤편에 판장문을 달았고, 앞은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천정에 문을 들어 열 때 거는 걸쇠가 있는 것을 보면 예전에는 앞에 들어서 열 수 있는 문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왼쪽의 방 두칸에는 작은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둘렀고 다락을 두어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하였다.

4. 이웅재고가 사랑채 대청 상량문
1912년에 중수된 사랑채의 상량문에는 “현익곤돈 현월 이십팔일 유조엄무 사신 중수 상량(玄黓困敦 玄月 二十八日 柔兆閹茂 巳時 重修上樑)”이라고 써 있는데, 현익곤돈(玄黓困敦)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해[年]를 세는 단위의 하나인 고갑자(古甲子)라고 하는 것인데, 현익곤돈(玄黓困敦)은 임자년을 뜻한다. 임자년은 1972년, 1912년, 1852년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량에서 보이는 현월(玄月)은 경술월(庚戌月)로 음력 9월을 뜻하고 있어서 9월 28일에 상량을 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살펴볼 것은 9월 28일이 ‘유조엄무(柔兆閹茂)’일이어야 한다. 유조엄무는 간지로 병술일이다. 이렇게 볼 때, 1852년 9월 28일은 임자년 9월 을해일에 해당하고, 1912년 9월 28일(양력 11월 6일)은 병술일이다. 따라서 이웅재고가 사랑채의 상량을 그대로 따른다면 1912년 음력 9월 28일(병술) 아침 8시[巳時]를 즈음하여 상량을 한 것이다.
참고로 사랑채 상량의 ‘현익곤돈’, ‘유조엄무’ 등의 고갑자를 잠깐 살펴보자, 현익(玄黓)의 현(玄)은 기운이 십분(十分)에 이른 것이요 익(黓)은 어둠이나 검다는 뜻으로 간지의 임(任)을 뜻하며 이것은 극도로 가득 차서 빛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곤돈(困敦)의 곤(困)은 곤괘(困卦)의 준말로 궁핍하다는 뜻이고, 돈(敦)은 도탑다 혹은 소생하는 기틀이 되는 것이어서 옛 운이 이미 다하고 기틀이 다시 일어난다는 뜻이다. 유조(柔兆)의 유(柔)는 기운이 견고하게 정해지지 못한 것이고, 조(兆)는 처음 징험하여 가리켜 말할 수 있는 것이니, 비록 견고하게 정해지지는 못하였으나 조짐을 보아 징험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엄무(閹茂)의 엄(閹)은 거두어 닫는 것이고, 무(茂)는 무성하다 혹은 번화하다는 뜻으로 번화한 것이 탈락되어 물건의 빛이 어두워짐을 말한 것이다.

 

[문화재]

· 지 정 :도지정 - 민속문화재

· 종 목 :제12호

· 지정일 :197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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